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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기독교에서 비종교인이 된 물리학자의 견해

(gguro) 2017. 9. 3. 22:05


창조과학이 이슈다. 종교가 없는 과학자들 가운데 대체 창조과학이 뭔지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기독교 과학자들은 어떻게 자신이 창조과학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몇몇은 그래도 창조과학이 맞을 수도 있지 않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리학자로서 창조과학을 지지하던 기독교인에서 비종교인이 되기까지의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사회적 논의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내가 창조과학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이었던 1992년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는 젊은 지구론과, 노아의 홍수로 전 지구의 모든 지층이 생성되었다는 이론, 대기 위에 있는 물 층에 의해서 자외선이 차단되기 때문에 므두셀라 같은 사람이 969살까지 살 수 있었다는 설명 등이 하나로 묶여진 이야기다. 거기에 창세기를 넘어서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 오병이어의 기적, 해가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등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자를 꿈꾸는 중학생이었던 나는, 명문대 출신 교회 일부 선생님들이 전해주는 이런 이야기가 그럴 듯해 보였고, 내 기독교 신앙을 굳건하게 만드는 한 계기가 되었다.


1996년 카이스트 입학 후,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창조과학에 대한 질문은 꾸준히 있었지만, 대체로 창조과학이 맞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다니던 과학원 교회에서도 때때로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와서 강연을 하는 것을 들었고, 같이 들었던 사람들과 토론을 하곤 했다. 카이스트의 기독교 동아리 안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6일만의 창조에 대해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스스로 연구를 하게 되면서도 이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같은 기독동아리 활동을 했고 생물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던 신실한 기독교인 친구에게 '신의 언어'라는 책을 선물받아서 읽기도 했는데, 여전히 진화론이 맞다고 하기엔 심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당시 책을 읽고 썼던 글도 있다 (독후감). 2010년의 글인데, 그 때 고민 후 내린 결론은 결국 6일간의 창조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사실 이 때쯤에는 내 주변에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창세기 1장은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늘어났을 때였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볼 때 창세기의 1장만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그 이후의 출애굽과 나머지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기엔 일관성도 없고 과학적 발견에 의해 성경의 해석을 맞춰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서 거부감이 컸다. 


2011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이 질문은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 같은 연구실에는 진화는 실험적으로 꾸준히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은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제 교회도 과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창세기를 재해석해야한다는 어찌보면 꽤나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분이었다. 그때쯤 나도 6일만의 창조와 6천살의 지구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창세기 1장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이때쯤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후 호주에 포닥을 하러 건너와서 결국 기독교를 떠나게 되었고, 창조과학은 더 이상 나에게 고민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일이 일어난 순서를 따져보자면, 기독신앙 -> 창조과학 -> 진화론 인정 -> 비종교인 으로 진행된 셈이다.


이 글에서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기독교 과학자는 반드시 신앙과 과학의 충돌을 겪는다. 그 충돌 중 하나인 창조와 진화에 대해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토론했다. 그 결론은 때로는 이쪽이었고, 때로는 저쪽이었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났든 그 때마다 신앙인이자 과학자로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입장을 정하려 애썼다.


기독교를 떠난 이후에 생긴 큰 변화는 생각의 자유이다. 내가 하는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안 맞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많이 듣던 말 중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내가 느꼈던 건 그 반대였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틀리는지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기독교를 떠나면서였다. 그것은 창조와 진화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였다. 더 이상 그런 고민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변화를 주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파운데이션'과 '로봇'이라는 유명한 SF소설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작가가 있다. 그 사람이 쓴 글 중에 모세가 그 형 아론과 창세기 1장을 쓰는 장면을 묘사한 글(How it happened)이 있다. 모세가 빅뱅부터 시작해서 기록하려고 하자, 아론이 파피루스가 얼마나 비싼지 아냐면서 6일로 줄여서 쓰라고 하는 내용이다. 난 중학생 때 과학동아에 번역된 것으로 이 글을 처음 읽었고, 창조과학을 지지하던 기독교 신자로서 공격받는 느낌을 받았었다. 기독교를 떠난 지금 같은 글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전혀 다르고, 아시모프가 어떤 마음으로 저 글을 썼는지 알 것 같다. 같은 글이지만 내가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극명하게 다르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기독교인에서 비종교인이 된 한 명의 물리학자가 겪은 생각의 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떤 한 쪽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른 쪽을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만 발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7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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