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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꾸로
대학교 교육. 이쯤에서 이런 대학교 하나쯤 나와주면 좋겠다. 본문
가끔씩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한국에 이런 대학교 하나쯤 나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공계에 한정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학생이 모이는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이다.
- 영어 강의 원칙적 금지. 제한적 허용.
- 모든 강의는 한국어로.
- 강의 교재도 모두 한국어로.
- 외국 유학생의 경우 한국어 시험을 고득점 받거나, 6개월의 어학연수 과정을 거친 뒤 학위과정 시작.
- 한국어 교재개발하는 교수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 영어 교재를 잘 번역하는 교수들에게도 지원금을 주고
- 대학교 입시에 영어 성적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 대학교 졸업이나 대학원 입시에 영어성적을 요구하지 않으며
- 한국어로 과학논문 쓰기를 필수로 교육하며
- 외국인 교수들의 경우 처음 3년간 영어 강의를 허용하되, 이후에는 한국어로 강의를 해야하며
- 학교 차원의 전문 번역팀을 구성해서, 연구논문은 한국어로 작성하면 영어로 매끄럽게 번역해주고
- 교수 임용시에 영어 면접대신 한국어 면접을 하고,
-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교수 임용 지원자의 경우 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을 요구하고,
- 영어 논문, 외국 연사 초청, 해외와 공동연구 등 영어가 필요한 모든 곳에 높은 품질의 영어 통역, 번역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 학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공식행사에 한국어 통역을 의무화
- 연구 논문 발표 실적에 한국어로 발표한 논문에 점수를 더 많이 주는 시스템
- 승진 심사할 때 한국어 논문이 있어야 승진 가능.
- 한마디로, 교수고 학생이고 누구든 영어에 신경쓰지 않고, 수학, 과학을 잘 하는 연구자면, 누구나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듬.
- 필요하면 훌륭한 품질의 영어 통번역 서비스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곳.
- 그들의 경쟁력은 영어가 아니라, 생각의 깊이와 논리적 사고와 뛰어난 문제해결능력 이라고 말하는 대학교.
- 국제화 따위 필요 없고,
-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학교.
- 그래서 졸업생들도 취업하고 나면 기업에서도 다 만족하는 대학교.
어디 이런 대학교 없나.....
괜히 한 번 가져와본 조선시대 성균관 모형
(출처: http://social.ktcu.or.kr/story/educationView.do?boardIndex=50463)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수학, 컴퓨터 등에 재능이 뛰어난데, 영어를 잘 못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수학자가 수학을 잘 하면 되고 물리학자가 물리를 잘 하면 되지 영어도 잘 할 필요가 있나.
몇 가지 보기를 들어보자.
보기 1)
수학을 정말 잘 하는 한 사람
김수학이라고 하자.
그런데 영어를 잘 못한다.
다행히도
그 사람이 대학원에 들어가려 할 때
영어 성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학을 잘 하는 것만 가지고
무사히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좋은 연구를 하고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서
박사후 연구원 시절을 보낸 뒤
한국에 돌아와
교수가 되어 좋은 연구를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후배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그 당사자처럼 하면 대학원에 못 가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을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면서 보내거나
아니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다.
현재 김수학은
여전히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논문을 읽고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이며
외국 수학자들과
전자우편을 통해 자유롭게 논의하고 있고,
뛰어난 수학실력을 바탕으로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기 2)
이전산이라고 하자.
컴퓨터에 매우 뛰어난 한 사람이 있다.
대학교 졸업 후
산업체에서 일하다가
박사과정에 들어가려 했는데
영어 성적이 모자라서 입학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포기.
이전산은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좀 더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보기 3)
물리학을 공부하는 최물리
수학도 그럭저럭
과학도 그럭저럭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적당히 잘 한다.
그런데
영어를
꽤 잘 한다.
대학원에 무사히 진학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각종 행사 등에서 중요한 일을 맡게 된다.
연구보다는
영어와 관련된 일에 계속 동원된다.
그러면서 늘어가는 실력은 물리실력이 아닌 영어실력.
결국 그럭저럭 졸업
그리고 그럭저럭 계속 연구 중.
위 세 가지 보기는 내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적당히 섞어서 보기로 만든 것이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수학, 물리, 화학, 전산, 전자 등의 공부를 깊이있게 할 수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어쩔 수 없이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영어권에 갈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무리한 전면 영어 강의 시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카이스트
(사진출처: http://www.hellodd.com/news/article.html?no=20570)
사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 중에서 자국어로 깊이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니 좀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 환경을 갖춘 나라라면 일본, 독일, 중국, 프랑스 정도가 아닐까. 심지어 독일만 해도 대학원에 가면 모두 영어로 하는 것 같으니, 대학원 교육까지 자국어로 해서 잘 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 일본 정도일듯. 그러니 앞에 열거한 나라들에 비해 규모가 작고 경제력도 부족한 한국에서 자국어로 대학원 수준의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교가 다 영어강의와 국제화라는 그럴듯한 껍데기만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수한 대학교 중, 적어도 한 두 학교 만큼은 정말 뛰어난 학생들이 한국어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고, 영어에 서툰 교수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있길 바란다. 외국어에 대한 불필요한 압박을 최소화해서, 그 시간에 좀 더 깊이 있는 사고와 도전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있길 바란다. 그 학교는 다른 학교들이 겉멋에 치우쳐서 놓친 좋은 인재들을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9월 17일
더 읽어볼만한 글.
"대학 내 무분별한 영어 강의를 반대한다." - 김종욱 (ㅍㅍㅅㅅ)
"해외교수들이 본 한국 대학들의 영어 강의 열풍" - 해외 교수들 (하이브레인) [PDF]
"대학 영어강의 허용 놓고 프랑스는 갑론을박 중" - 이상언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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